남전

 

한 마리 수고우가 되련다.

남전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왕 노사가 자신을 팔려고 한다. 누가 그를 사겠는가?>
어떤 중이 대답했다.
<제가 사겠습니다.!>
남전이 말했다.
<나를 비싸게도 싸게도 취급하지 마라. 그대는 어떻게 사겠는가?>
이 말에 중이 아무 대답도 못했다.

어떤 중이 남전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는 백 년 뒤에 어디로 가시렵니까?>
남전이 말했다.
<한 마리 수고우가 되련다.>
중이 말했다.
<제가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따라오고 싶다면 입안 가득히 풀을 물고 오너라!>


라즈니시 강의

** 그대는 삶을 한편의 드라마나 연극같이 가볍게 대할 수도 잇고 또는 매우 심각하게 대할수도 있다.삶을 심각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쓸데없이 엄청난 고통을 고통을 감수한다. 그들은 실패해도 고통받고 성공해도 고통받는다. 가난해도 고통받고 부유해도 고통받는다.

가난한 자도 고통받고 부유한 자도 고통 받는다.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간에 어떤 삶을 살든 간에 매단계마다 불안과 좌절로 고통받는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존재계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엄청나다. 거의 끝이 없다. 그 욕망으로 인해 삶은 끝없는 경쟁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경쟁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걱정과 불안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죽음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삶은 불행이고 갈등이며 고통이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으로 끝난다. 그 죽음은 깜깜한 암흑에 가려져 있다. 사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선은 심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선은 삶을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이것은 일견 이상해 보인다. 지금까지 세상의 여타 모든 종교들은 심각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은 그러한 태도와 멀리 벗어나 있다. 선은 삶을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삶 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그렇다.

삶을 즐거운 놀이처럼 보기 시작할 때 그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모든 짐들이 사라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두려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대는 아주 가볍고 경쾌한 삶 또는 무거움이 거의 없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대는 무게없는 자가 된다. 그리고 활짝 열린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다. 

** 심각한 인간이 세상을 만들었다. 심각한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었다. 그들이 철학과 문화 도덕을 만들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들의 작품이다. 
선은 심각한 세상을 내던졌다. 선이 창조한 세상은 매우 유쾌하고 웃음이 넘친다.

..나를 팔려한다. 값이 얼마인가? 
인간은 아마 소나 양이나 아니 닭보다 값어치가 더 적을 것이다.
인간은 시장에서 아무 값도 없다.
스승은 값이 없이 살 수 있다. 스승에게 가기위해 필요한 것은 그대의 빈 가슴뿐이다.

** 화상께서는 100년 뒤.. 어리석은 질문이다. 선은 지금 이 순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한마리 수고우..농담이다.

깨달음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선은 그대의 삶으로부터 모든 목적과 문제, 모든 의문을 거두어 간다., 그 모든 것들이 그대를 심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은 그대에게 지금 이 순간을 준다. 
삶은 아름다운 연꽃으로 피어나기 위한 기회이다.
그런데 심각함은 그 모든 연꽃을 파괴한다.

** 오직 장미꽃만이 그대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 준다. 장미꽃만이 그대의 가슴에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회 전체가 심각한 사람들에 으;ㅣ해 만들어 졌다. 이런 현상이 바뀌어야만 함ㄴ다. 삶은 유쾌한 농담, 즐거운 놀이, 아름다운 드라마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삶을 아름다운 드라마나 소설 가상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죽음까지도 픽션으로 만들 수 있다. 그의 삶은 사랑과 감사 평화와 침묵의 춤사위가 될 것이다. 이것이 禪이다.


- 세끼소의 시 한편 -


긴 황금빛 지팡이를 흔들며
당신은 저 내리막길을 내려가셨습니다.
몇 날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해 말씀하시니,
당신의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전부였습니다.
법당과 절의 화려한 색깔,
그 주변을 빽빽하게 감싸고 있는 푸르른 숲의 아름다움,
그리고 나무그늘의 산책길.
아름다워라! 우리의 가슴이 열리고,
우리의 우정에는 모래 한알 서걱대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될진저
부유하는 세상에서는 이불 속의 바늘을 찾는 것 같습니다.
이 산을 찾은 추억은 영원히 전해져야 합니다.
이 산문 안에는 행복을 넘어선 무엇이 있습니다.


**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버리고 싶어했던 것들을 껴안고 살아간다.
무엇이든지 버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염려한다. 사회는 그대가 아주 전통적이고 관습에 충실한  인간이 되어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대는 내면으로 들어거야 한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대 자ㅣㄴ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 
설령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대만의 진리 안에서 살아라. 그러면 최소한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대에게 향하던 존경이 사라지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이 어떤 견해를 갖든 신경쓰지 마라. 그대는 단 한가지 자기일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그것은 행복, 지복, 침묵, 그리고 존재계와 더불어 편안히 쉬는 길이다. 

**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홀로됨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무어라하건 홀로 될 때에만 행복이 온다. 외부에 신경쓰지마라. 그들에게 동요되지 말라. 그대만의 통찰력에 따라서 살라. 그러면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음까지도 맞을 수 있다. 완전히 만족한 삶을 산 사람에게 잇어서는 죽음은 엄청난 혁명의 기회로 다가온다. 거기엔 더이상 죽음이 없다. 그대는 영우너한 세계로 들어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이 된다. 그러나 죽음은 오직 실재를 위한 문이다. 실재하지 않은 것들에겐 죽음은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