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

 

모래성을 걱정하지 말라.

남전이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모름지기 우리와는 다른 異類들 가운데에서 일하고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조주가 응답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말하는 류는 무슨 뜻입니까?>
남전이 두 손을 땅에 대고 네 발로 걸어가는 자세를 취했다.
조주가 남전의 뒤쪽에 다가가 그를 땅바닥에 밟아 버렸다.
그리고 열반당으로 돌아가서는,
<후회스럽구나, 후회스러워!>
하고 외쳤다.
남전은 사람을 보내 조주가 무엇을 후회하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조주가 말했다.
<덤으로 한 번 더 밟아 뭉개버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라즈니시 강의

** 오로지 선만이 놀이와 웃음에 대해서 종교적인 접근방식을 취한다. 선에서는 위대한 스승들조차 말과 행동, 몸짓으로 서로 놀이를 즐긴다. 그러나 언제나 이 모든 놀이는 영원하고 궁극적인 세계를 암시하는 방편이다. 그들의 웃음 뒤에는 더할 나위없는 고요함과 평화가 숨어 있다. 그들의 웃음은 히스테리컬하지 않다.

** 선사들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어떤 것을 암시하기 위해 서로 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엄청난 아름다움과 장엄함함이 깃들어 있는 이런 짤막한 일화를 놓고 수백년간 토론을 한다.
남전, 조주 모두 수천명의 제자를 거느린 붓다들이다. 그들은 서로 만나고 유희를 즐긴다. 그들은 세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세상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병든 사람이다. 놀이를 즐기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대에게 신비의 문이 열린다.

..요즘 사람들은..
남전은 인간이 너무 심각해지고 유희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물고기, 나무, 동물과 어울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있다. 
장미꽃은 언제나 장미꽃이다. 시대의 변화는 장미꽃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자연계는 아직 존재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간은 에고에 사로잡혀 존재계와 분리되어 있다.

** 그대는 자연의 적이 아니다. 그대는 자연의 한 부분이다. 만일 존재계나 자연이 그대와 공존하기를 거부하면 그대는 곧 죽어 없어지게된다. 자연은 그대에게 매순간 필요한 호흡 공기 물, 음식 모든 것을 제공한다. 그러니 자연을 정복한다는 터무니 없는 발상을 갖지말라. 
이제 인간은 자신을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과 마찰을 일으켜 어떻게 인간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우주의 먼지처럼 작은 존재이다. 그대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겠는가? 기껏 80년 그런데 그대는 영원 전부터 이곳에 있었고 앞으로로 여전히 무궁토록 여기에 있을 자연을 정복하겠다고? 그대와 같은 사람들이 수백억명이 태어나고 사라졌다. 세상을 엄청나게 변형시켰으나 여전히 그들은 사라지고 자연은 그대로다. 그들의 발자국, 그들의 그림자가 어디 있는가?

** 선은 삶을 심각하게 대하지 않는다. 선은 삶을 즐거운 놀이처럼 대한다. 선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바닷가에서 조개껍질과 모래알을 줏어 모으는 어린아이들 또는 모래로 집을 짓고 노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의 삶은 그와같다. 심각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의 모든 심각함은 모래성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그대는 모래성을 두고 떠날 것이다. 모래성을 마구 짓밟고 떠나든 그냥 떠나든 모래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 (155p) 이솝 우화에는 사람과 동물과 나무가 서로 말을 통한다. 오늘날 그것을 모두 우습게 여기지만 사실 고대엔 그렇게 말이 통했다는 설이 있고 오늘날 새로운 과학도 식물이 인간의 말을 이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동물은 나무보다 더 지성적이다.
그런데 나무는 인간의 마음까지 읽는다.
우리로서는 이런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나무가 인간의 마음을 읽고 언어를 이해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도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고래는 5000키로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통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 남전은 고대에는 다른 종류의 피조물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저기 내 아들이 오고 있소. 그는 드디어 자신이 누군지 알고 돌아오고 있소. 너무나 아름답고 겸손한 모습으로. 지식도 없고 자만심도 없고 한 점의 에고도 없이 마치 서늘한 산들바람처럼 그저 침묵으로 그가 오고 소..p164>

** 조주는 말한다.
異에 대하여는 묻지 않겠습니다... 異라니? 세상에 異가 어디에 있는가 우주 전체가 하나인데...
그런데 類란 무엇입니까?
카테고리를 만들지 마십시오. 깨침이 일어났을 때 그대는 누구인가? 진여일 뿐이다. 진여에는 이름이 없다. 
왜 당신은 아무 구분도 없는 존재를 구분하고 있습니까?
남전은 말 대신 네발로 걷는다. 실존을 보여준다. 그는 소처럼 보인다.

** 조주가 밟은 것은? 물론 남전이 아니라
 동물이다. 나는 동물보다 우월하다. 동물이 어찌 의식적인가 동물의 무의식을 조주는 밟아 뭉개버린 것이다.
그런데
...후회스러워는? 
남전의 말은 .그대는 후회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옳은 대답을 했다
그런데 한번 더 밟지 못해 후회 스럽다는 것은?
자연 동물 새들과 어울려야한다는 태도를 변화 시키기에 한번으로는 부족했다는 의미이다.



- 세끼소의 시 한편 -


하나의 가지 위에
수백 송이 꽃이 피었으니
정원에는 형형색색 꽃들이 만발하구나.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서보니
바람결에 봄빛이 완연하구나.이미 무수히 세상을 찾아왔었거늘.


** 선시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눈 앞에 그려보라. 
선시는 시각화의 문제이다.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이다.
열린 문으로 햇살이 들어 올 때 그대는 꽃의 향기를 맡는다. 몇 송이 꽃을 꺾을 수도 있을 지 모른다.

** 나는 진리에 관심이 없다.. 진리는 나의 존재 자체이다. 사랑, 자유, 자비, 기쁨, 이 모든 것이 내 의식의 여러 측면이다. 그것들은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애착의 문제는 없다. 
  그대는 오직 그대가 아닌 것에만 애착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그대가 자신의 의식 안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갈때 이 모든 특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다. 그대가 그런 특성ㅇ르 연마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대의 의식아능로 더 깊이 뚫고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그대는 사랑과 만나고 자비와 만난다. 그대는 진리와 만나고 자유와 만난다. 그대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대가 기울려야하는 단 하나의 노력은 의식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 모든 특성은 의식에서 피어나는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