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

 

열망이 절실하다면

육궁대부가 말했다.
<조법사의 말에 '만물이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니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남전이 뜨락에 핀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부, 요즘 사람들은 이 꽃 보기를 마치 꿈결에 보는 것처럼 하는구나.>

육긍대부가 남전에게 물었다.
<저희 집에 돌이 하나 았는데, 어떤 때는 서고 어떤 때는 눕습니다. 이제 그 돌을 깎아서 불상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일이 되겠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물론, 가능하지>
대부가 말했다.
<또한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남전이 말했다.
<그래, 안 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라즈니쉬 강의


** 육긍대부는 남전을 하산하게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게한 분이다.

대부는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일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라면 그때에는 옳고 그름도 없으며 선악도 없다. 신도 없고 악마도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옳고 그름은 마음의 판단이다. 그리고 마음은 근원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개념은 도덕적인 개념이다. 그것들은 종교적이지 않다. 우리의 개념은 근원적인 본체의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다. 우주 삼라만상은 근원에서 나왔다가 근원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파도가 일었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p64)

** 모하메드시대 남자의 부족으로 만든 일부다처제를 아직도 갖고 있는 모하메드교인들.
** 노자의 재판 이야기.
** 16,000명의 부인을 거느렸던 크리슈나를 숭배하는 힌두교인
** 미국에서 배척당한 라즈니시.
지금까지 옳고 그름은 누가 권려을 잡느냐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히미 모든 것을 결정한다. 

** 남전의 대답은 다소 우회적이다. 남전은 사람들이 너무나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무엇을 보건 꿈결에서 보는 것처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꿈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들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모든 것이 서로 용해되어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대립되는 것도 없고 모순되는 것도 없다. 존재계는 하나의 유기적인 단일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의식 적으로 산다. 꿈꾸듯이 살아간다. 그대의 머릿곡에 떠오르는 생각은 낮에 꾸는 꿈, 눈을 뜨고 꾸는 꿈에 불과하다. 그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만큼 의식적이지 못하다. 그대는 다만 주어진 규율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 규율을 만든 사람들조차 그대아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다.

** 5000년전에 만든 마누의 법-인도의 카스트제도를 아직도 갖고 있는 인도.

... 저희 집에 돌이 하나 있는데...
대부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하여 묻고 있다. 돌은 서지도 눞지도 않는다. 돌은 그리 쉽사리 지치지 않는다. 
남전은 가능하지라고 말한다. 돌멩이도 붓다가 될 수 있다.
강렬한 열망이 있다면 돌멩이도 붓다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대가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때에는 도리가 없다. 
붓다가 되려는 열망 자체가 그대 안의 붓다를 일깨운다. 붓다는 어딘가 먼 곳을 찾아 헤맴으로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붓다는 그대 안에 숨어 있다.
열망이 절실하다면 문이 열릴 것이다. 그대 존재의 중심, 그 근원의 뿌리까지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용기를 갖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대는 틀림없이 붓다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대 스스로 문을 닫는 격이다. 그대를 붓다로 만들어 줄 사람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그대는 붓다가 될 수 있다.  


- 세끼소의 시 한편 -


사람들은 황금을 잘못 다루어 녹여 버렸다.
그리하여 황금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네.
행운과 불운은 둘 다 꿈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늘
이 세상을 돌아보지 말라,
땅굴 속의 오랜 구멍을.
날아가는 새는 푸른 하늘에
발자국을 남겨놓지 않느니.


** 우리는 황금의 시대를 뒤에 버리고 떠나왔다. 우리는 그 시대를 잘못 이용했다. 
희말랴야 아내까지 제공하는 친절한 부족들을 영국인들이 병을 옮겨 몰살시킨 일화.
우유에 물을 넣은 상인 이야기


** 고다마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대는 이미 잘 딲여진 길을 따라 가서는 안된다. 그대 스스로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걸어야한다. 걸어가면서 길을 만들어야한다.
그 길은 하늘과 같다.

** 깨달은 자들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는 어떤 붓다의 뒤도 따라갈 수 없다. 그대만의 길, 그대 홀로 걷는 길을 찾아야한다. 이것이 그대의 존엄성이다.
내면으로는 다리로 걸어 들어갈 수 없다. 그대는 눈을 갖고 들어가야 한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야한다. 거기엔 아무 발자취도 없다. 내면의 하늘은 완전히 황무지다. 그러나 목표지점은 가깝다. 단 한 발짝만 내 디디면 된다.
절절한 마음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면 붓다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