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전
하늘과 땅이 하나이거늘
어느날, 남전의 절에 있는 승려들이 마조의 제사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남전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일 우리는 마조선사에게 채식으로 공양을 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오겠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젊은 승려들 가운데 동산이라고 불리는 생각승이 있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기에 오려고 동료를 기다릴 것입니다.> 남전이 말했다. <그대가 비록 젊긴 하지만 가히 다듬을 만하구나.> 동산이 응답했다. <화상께서는 양반을 상놈으로 몰지 마십시오.>
라즈니시 강의
** 선의 장구한 역사에는 중대한 이정ㅍ와 같은 몇명의 ㅣㄴ물이 잇다. 그 첫번째 인물은 마하가섭이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불교 경전에서 딱 한번 언급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다마 붓다의 가장 뛰어난 제자로 여겨진다. 그는 이십여 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 질문도 없이 그저 고타마 붓다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 프라센지타왕의 귀한 선물, 철학자 마우링가푸타. 그리고 마하가섭. 프센지타왕이 꽃을 바치자 붓다는 마하가섭을 불러 그 꽃을 건네주었다.
이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하가섭을 첫번째 선사로 만들었다.
** 두번째의 획기적인 전환은 보디달마이다. 그는 마하가섭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다. 세번째는 남전이다.그에 이르러 선은 작은 물줄기가 아니라 거대한 대양이 되었다. 남전은 748년 중국의 북쪽지방에서 출생했다.그는 어린 나이에 수행을 시작하여 서른에 출가 이름난 절을 전전했다. 마침내 개원사에 으르러 마조를 만났다. 그는 깨달음을 얻었으나 마조의 맥을 잇지는 않았다. 그는 50세에 스승을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 .. 어느날 남전의 절에... 마조는 채식주의자였다. 이것은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동산도 나중에 훌륭한 스승이 되었다. 그는 마조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혼자 오지 않을 것이다. 마조는 자비심이 철철 흘러 넘치는 선사였다. 깨달은 사람을 초대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사랑이 넘치는 가슴으로 초대해야할 것이다. 동산은 남전의 제자가 아니다. 다만 여행중인 객승이었다. 오기는 할 것이나 동요를 기다릴 것이다... 동산은 마조의 습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전은 동산의 대답을 크게 인정하지는 않았다. 마조가 동반자를 기다를 필요는 없다. 그는 가르치러 오는 것이 아니다. 손님으로 올 것이다.
.. 화상께서는.. 이 말 한마디가 동산을 박살낸다. 스승은 그대를 모욕할 의사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줌으로서 무엇을 얻겠는가?그러나 동산은 핵심을 놓쳤다.
- 세끼소의 시 한편 -
성속이 본래 한 집에 산다. 대사께서 자비의 손으로 문을 열어 주셨으니, 법당에 누가 앉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앉았는지 묻지 마라. 이 기왓장과 서까래가 천지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나니.
** 세끼소의 훌륭한 통찰력을 보라. 그는 말한다.
성속이......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본래 한 집에 산다. 대사께서 자비의 손으로 문을 열어 주셨으니,
머리수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으로 들어갔는지 묻지마라. 중요한 점은 남전이 문을 열었다는 것이며 성과 속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혁명이다.
남전과 같은 사람이 절에 있으면 기왓장과 석까래도 신성하고 성스럽다.
** 남전은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이 하나이며 다만 시각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영혼을 정화하기 위하여 육체를 고문할 필요가 없다. 육체와 영혼은 함께 어울려 춤출 수 있다. 그들은 하나의 신성한 춤이 될 수 있다. 정신성이 육체까지 변형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신성이랄 것도 없다.
조르바는 붓다이다.
나는 대지와 하늘을 하나로 연결시키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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